《이역의 글자들이 각각 서로 같지 않은데 이것은 바로 발해국의 글자이옵니다. 다만 옛 제도에 이역에서 국서를 올리면 다 중국의 글자체를 따랐고 따로 부함(다른 함)에 본국의 글자로 베끼여 보내군 하였소이다. 지금 발해국이 표문을 갖추지 않고 마침내 국서를 올려 임금께서 보게 하였으니 이미 례를 다하지 않은것은 둘째치고 국서속의 말은 거슬리고 거만함이 더우기 한심하나이다.》
《그 국서안에 요구한것이 무슨 일이며 말한것은 무슨 말이냐? 경이 명백히 짐에게 아뢰여 듣게 하라.》
리태백은 명령을 받자 국서를 들고 임금의 앞에서 중국 당음으로 하나하나 번역해나갔다.
그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였다.
《발해 대가독은 당조관가에 이 국서를 부치노라. 너희가 고려(고구려)를 차지한데로부터 우리 나라와 가까와지고 변강군사들이 루차 강역을 침범하였는데 관가의 뜻에서 나온것이리라 생각한다. 내 지금 참을수 없는것이니 관리를 파견하여 국서를 가지고와서 이에 대해 설명하며 장차 고구려의 176성을 우리 나라에 양도함이 옳을것이다. 나에게는 좋은 물건이 있으니 대신 보내줄것이다. 태백산의 토끼, 남해의 곤포, 책성의 메주, 부여의 사슴, 교힐의 돼지, 솔빈의 말, 옥야의 풀솜, 하타미의 붕어, 구도의 오얏, 락유의 배이다. 너희 집에는 다 구분이 있어 1년에 한번 공물을 바칠것이다. 만약 수락하지 않으면 우리 나라는 곧 군사를 일으켜 와서 쳐죽일것이니 또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 보자.》
리태백은 소리를 높여 류창하게 번역하였다.
현종왕은 국서의 내용을 듣고 낯색을 흐리며 불만조로 관리들에게 물었다.
《발해가 무도하여 곧 고려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재력이 다 소모되여 장차 어떻게 이에 응할것인가?》
리림보가 나섰다. 《발해인들이 비록 방자하게 큰소리를 치지만 그 병력을 헤아리건대 어찌 능히 천조에 맞설수 있사오리까. 이제 변장에게 지시하여 방어를 엄격히 하다가 침범하면 군사를 일으켜 치는것이 옳을것이옵니다.》
양국충이 뒤를 받았다.
《고려(고구려)는 멀고 원래 우리 령토의 밖에 있으며 그 군사들과 련이어 병화를 맺어 힘이 모자라는데 다 다루지 못할 땅을 다투는것은 앞으로 변방밖의 여러 성들을 버려두는것만 같지 못하나이다. 페하께서는 오직 힘껏 변방안의 지방을 굳게 지키는것이 편할것이옵니다.》
마침 조정에 있다가 두 재상의 말을 들은 삭방절도사 왕충사는 조심스레 자기 생각을 아뢰였다.
《옛날에 태종왕이 세차례 고려(고구려)를 치다가 재력이 다 소모되였소이다. 고종왕때에 이르러 대장 설인귀가 수십만의 용병으로 대소 수십차례 싸워서야 겨우 얻었나이다. 오늘 어찌 경솔하게 버리는 의견을 용납하리까. 다만 오늘날 태평세월이 오래되여 사람들이 얼마간 전쟁을 잊었으니 만약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 작은 나라라고만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