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톤 기념탑.
워싱톤공항 출구에서 노랑머리를 한 청년이 우리를 반겨맞았다. 그는 하윤보라고 하는 운전기사였는데 12년 전에 료녕성 철령시에서 미국에 류학왔다가 졸업하고 눌러앉았다고 했다.
워싱톤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온통 울창한 수림이여서 첫인상에 도시라기보다도 공원이라는 감이 들었다. 수림속에 집들이 보이였다. 도시중심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무숲에 가려진 1-2층으로된 단독 가옥들이였다.
워싱톤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시였다. 지도를 보면 포토맥강 북쪽류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버지니아주와 다른 쪽으로는 메릴랜드주와 경계하고 있다. 1790년에 죠지 워싱톤 대통령이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프랑스건축사 피에르랑파에게 새 수도의 설계를 의뢰했다.
워싱톤의 도로는 잘 정비되여 있었다. 시원한 거리는 피에르 랑파의 설계를 골격으로 이어받은 것이다. 현재의 워싱톤 인구 는 80만명이고 교외에서 출근하는 사람을 합치면 백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워싱톤은 사계절이 분명한데 기온은 우리 연변기온과 비슷하여 4월초순이건만 쌀쌀한 편이였다.
우리는 공항을 나와 뻐스를 타고 백악관을 보러갔다. 나는 백악관으로 간다고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났다. 관람객들이 백악관을 마음대로 드나드줄로 알고 세심히 관찰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관람객들이 백악관 가까이로 갈 수 없게끔 통제했다. 우리는 백악관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려던 욕심을 포기하고 그저 먼곳에 배경으로 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미국 국민들이 애대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 1865년 4월 15일) 1861년 3월에 대통령으로 취임해서 암살될 때까지 미국의 16번째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그는 임기 기간 남북전쟁이라는 준엄한 내부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성공해 미국련방을 보존했고 노예제를 페지하는 위대한 사업을 펼쳤다.
우리는 링컨기념당을 돌아본 후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갔는데 한칭 보수작업중이였다. 국회의사당도 흰색건물이였다. 국회의사 당에서는 상원과 하원의원들이 모이여 법률을 만드는곳이다. 국회 의사당 앞에는 호수가 있었다. 관람객들이 호수앞까지만 갈수 있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워싱톤에는 수많은 국가기념물과 박물관이 있고 미국련방정부의 중심관청이 모두 모여있다. 워싱톤에는 174개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회, 미주기구, 아메리카개발은행, 범아메리카 의료기구의 본부, 국제 무역협회, 로비단체, 직능단체 등 여러기관의 본부도 있었다.
워싱톤에는 뉴욕과 달리 초고층건물이 드물다. 건축법에 의하여 워싱톤 기념탑 (169메터) 이상으로 건축하지 못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페타곤(五角大楼), 련방의사당 등 미국의 주요 정부기관건물들도 높지 않았다.
워싱톤은 정식 련방주가 아니므로 상원의석은 없으나 하원 의석 1석이 있고 대통령선거단 3표를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력사를 보면 최초의 유럽인들이 17세기 이곳 워싱톤 지역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알곤킨족이 현재의 워싱톤을 흐르는 애너스터어강 주변지역에 거주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