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조식후 화룡 완루구전투 전적지로 약 2시간 이동
▶완루구 전투: 1920년 10월21일 오전~22일 새벽, 홍범도장군부대는 남북으로 협공하는 일본군의 포위속에서 어둠을 타서 재빨리 빠져나왔습니다. 일본군은 앞뒤를 분간할수 없는 어둠속에서 일본군 자국 군끼리 교전하였습니다.
▶천수평(泉水坪) 전투: 1920년 10월22일 새벽 , 김좌진장군부대는 천수동에서 천막치고,숙영하고 있는 일본군 기병중대를 포위, 공격하여 일본군 400여명을 사살하였습니다.
▶어랑촌(渔浪村 )협공 전투: 1920년 10월22일 오전~저녁 , 어랑촌 야산고지에서 김좌진장군부대가 일본군의 포위공격을 받고있을때 홍범도장군부대가 일본군의 측면을 공격하였고 그 틈을 타서 김좌진장군부대가 탈출에서 성공하였습니다. 어랑촌전투는 청산리전투 중 제일 큰 전투입니다.
독립운동가 김좌진장군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화룡 청산리전투전시관으로 이동
▶청산리대첩전시관: 김좌진장군이 이끈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은 1920년 10월 20~26일 청산리(靑山里)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 어랑촌 등지에서 일본군과 10회의 격전을 전개, 일본군 3,300명을 일시에 섬멸하였습니다. 이를 청산리대첩이라 하고 독립전쟁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습니다. 청산리전투 현장은 지금의 화룡시에 있습니다.
▶광동촌조선족마을: 광동촌은 연변의 최대 녹색입쌀 생산기지이고 옛날 황제의 공미(贡米)로 제공하던 조선족마을입니다. 광동촌의 전원풍경과 푸르고 푸른 논밭을 둘러보느라면 조선족의 전통,민속민풍을 페부로 느낄수 있으며 현시대 도시인들이 농촌견학을 꿈꾸는 리상적인 터전이기도 합니다.
우리역사 그대로 남아있는 용정으로 이동
▶일송정정상트레킹: 백두산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 오른쪽 비암산우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보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일송정"입니다. (약 1시간)
등산입구--꽃바다--바람개비--일송정
▶해란강:발해의 두번째 서울 서고성을 흐르는 강이며 해란강의 젖줄기를 마시고 자란 평강벌 입쌀은 황제도 먹었다고 합니다.
▶일본간도총영사관:일본이 한국을 대신해 중국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나눈 "간도협약"을 체결한 곳입니다. (외곽관광)
▶용두레우물:1880년경 한국인이 우물을 처음 발견하여 그우물을 용두레우물이라 하였고 이 우물 기원(起源)하에 용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용정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중식: 고향음식
석식:◆ 연길 양꼬치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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