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하얗게 칠하며
알 듯 말 듯 알 수 없는 미소가
온 세상을 지우며
새벽을 벗겨내서
백발의 어둠이
내 창가에 고즈넉하다
나는 나를 더 참을 수가 없어
하늘의 지혜 같이 쌓여
하얀 여백으로 펼쳐진
때묻지 않은 순수 우로
쑥쑥 발을 뽑아가며
두줄로 나를 심는다
래일을 심는다
내 소리의 씨, 내 생각의 씨
마음을 더욱 가난히 키우리라
반 고호의 얼굴을 련상시키는
소나무들이 어둑어둑 줄 지어
땅의 여유를 자랑하는
큰 나무 마음속으로 가며
발밑에서 으스러지다
뭉치는 소리로
순백의 고요를 깨고 있다
나무들의 발목을 죄며
그립도록 내려쌓인
순백의 미소 속에
혼자 가야 할 마지막 한걸음도
남기고 싶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날마다 밖으로 나간다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집으로 가는 길을 만나리라
참으로 많은 가지들을
나에게서 바람이 꺾어갔다
이 땅을 딛고 사는 삯으로
절망을 사랑하며 셈 치뤘다
나의 발은 이제 알게 되리라
순백의 숲에 이르는 길을!
설산
장백산이 쏟아낸 산들이
정지된 파도처럼
한장의 산수화로 펼쳐있다가
흰겨울을 두껍게 껴입고
구불구불 백룡으로 날아올라
순백의 서정으로
하늘을 휘감는다
그 꼬리에 감겨
태양이 휘둘리다가 뿌리워
서산에 부딪쳐 피를 흘리며
하루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