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태로협곡(太鲁峡谷)을 품은 화련시는 바다. 산, 온천 등 관광업을 발전시키기에 충분한 관광자원을 갖추고 있다.
태로협곡은 화련시 북쪽으로 멀지 않은 시교에 있었다. 대만은 중앙산맥 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있었다. 동쪽 화련에서 서쪽 팽화(彭化 市) 로 가려면 험악한 이 태로협곡을 지나야 했다.
대만에서 이 협곡에 뻐스가 통할 수 있는 길을 닦을 당시 군민당 퇴역장병들이 맡아나섰단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에 매달려 정과 망치로 남포구멍을 뚫어 절벽을 까내면서 길을 닦았는 데 태로협곡 어귀에는 이 협곡에 길을 닦은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협곡어귀에 들어서자 가이드는 안전에 대한 주의를 주고는 매 사람에게 안전모 하나씩 내주었다. 우리는 안전모를 쓰고 가이드의 뒤를 따랐다. 협곡에 닦은 길은 뻐스두대가 동시에 지날수 있을 도록 넓었다.
길옆에 장치된 안전망 너머로 내려다보니 골짜기는 아츠랗게 깊었고 마주보이는 절벽은 수백메터 높이로 아찔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협곡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에 섬뜩해났다. 산세가 험악하다고 소문난 금강산에 비해서도 더 험준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협곡의 이모저모를 관찰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협곡에는 연자구(燕子口)와 장춘사(长春祠) 미부승도 (美不胜都) 등 아름다운 명소들이 숨어있었다.
가이드의 해설에 의하면 태로협곡의 바위들은 석회암과 화강암 으로 조성되였는데 수억만년의 비바람속에 석회암이 점차 부식되여 물에 씻겨내려 골짜기가 점점 깊이 패워져갔다. 현재는 석회암이 씻기여 내려가고 단단한 화강암만 남았다. 골짜기에는 집채같은 화강암 바위돌이 널려있었는데 천태만상이였다.
일제가 대만을 점령하고 있는 기간 이 협곡에서 대량의 석회석을 채굴하여 가져갔다고 했다. 태로협곡은 지질학자들의 관심을 사는 곳이다. 일본침략자가 물러간 후 대만의 지질학자들은 태로 협곡에서 질좋은 보석을 발견하였다고 했다.
화련에는 온천 별장이 있었다. 지배인은 우리를 502호에 배치했다. 일반 상식으로는 5자가 있으면 호텔에서는 5층을 의미한다. 우리가 열쇠를 가지고 아무리 찾아도 5층집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산기슭에 4층짜리 층집이 있고 그 집에서 10메터 올라가면 3층짜리 집이 있었다. 그집 1층에 곧 바로 502호가 있었다.
원래 온천 별장에 들 때 목욕탕 물은 섭씨 140도에 달하고 류항성분이 많으므로 주의하라고 했다. 온도를 조절하고 문을 열어 류황냄새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화련온천에는 여러가지 광물질이 포함되여있어 피부병, 관절염,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래 그런지 온몸이 거뿐해나고 소화도 잘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