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오사까 직항선이 개통된 건 려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희소식이였다. 일본행이 이처럼 수월해졌는데 참을 수 있나, 하늘 높아지는 9월 즈음, 12시50분에 연길-오사까행 항공기에 탑승하여 16시 30분에 오사까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길을 떠날 때는 일본은 연길보다 기온이 더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작 오사까에 와보니 연길의 기온과 비슷하였다.
태평양 서북부의 섬나라인 일본은 혹까이도, 혼슈, 시고꾸, 규슈등 4개의 큰섬과 수천개의 작은 섬 및 주변의 해역으로 이루어졌다. 혹까이도와 규슈는 텐널로 통하고 있으며 시고꾸와 혼슈는 큰다리로 이어져있다. 섬나라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에는 많은 훌륭한 항만들이 있다. 이는 일본이 어업, 조선업, 해상운수와 대외경제무역에 매우 유리하였다.
일본은 일찍이 도시화됐다.
일본사람들은 도꾜, 요꼬하마, 교또, 나고야, 오사까, 고베, 기따규슈, 나가사끼 등 대도시에 집중해 살고 있었다. 이 여덟개 도시의 인구는 일본 전체인구의 60프로를 점한다고 한다.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사이에 오사까의 전경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오사까시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서 경치가 아름다웠다. 오사까부두에는 초대형 륜선들이 정박해있고 작은 배들도 오가고 있었다. 오사까시에는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고 2-3층 집들이 많았다.
도시속에 논밭이 보이자 나는 신기하게 생각되여 가이드 한테 일본농민들은 왜 도시에서 밭을 부치는가고 물었더니 일본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로인들이라 했다. 이들은 정부에서 로인들에게 발급하는 ‘보조금’외 땅을 다루는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토지보상금을 받기 위해 땅을 부치고 있다고 했다.
오사까시는 도로보다 낮다는 감이 들었다. 멀리보면 높이 보이는것이 도시주변에 있는 고속도로였다. 일본의 고속도로는 도시보다 높게 닦아져 있었다. 왜 일본의 도로는 도시보다 높을가? 땅이 적고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도로를 닦을 때 될수록 토지를 적게 점하려고 다리식도로를 닦는 경우가 많단다. 다리식 도로는 토지를 적게 점하고 지진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흙을 기반으로 하여 닦은 길은 금이가고 인차 파손될수 있지만 다리형 길은 파손되는 비률이 적다고 한다.
오사까는 한때 일본제국을 통치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고향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곳을 기반으로 전 일본을 통일하고 통치했다 한다. 공원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정 당시의 궁전이 있었다. 궁전 주위에는 깊은 해자가 있었다. 커다란 돌로 해자벽을 쌓은것이 가관이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해자를 만들 때 각지방 관리들에게 많은 돌들을 운반해 오게 하였단다. 어떤 돌은 하나의 무게가 5톤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