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귀향창업인 리경명
리경명은 의료종사자이다. 19살 때 우연히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리경명은 의사가 되려는 포부를 지녔고 1994년 9월에 연변대학 의학원 학생이 됐다. 5년 동안의 대학생활에서 그는 의학지식을 열심히 배우며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의사가 되는 꿈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그의 의지와는 달리 구강진료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전공한 학과가 다르기에 많은 전문 리론지식은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야근을 하면서도 그는 리론학습을 견지했다. 끈질긴 노력으로 그는 몇년 후부터 독자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구강의사로 거듭났다.
환자들을 접촉하는 가운데서 그는 전문기술이 모자람을 느꼈다. 청소년들은 현소재지에서 치아를 교정하지 못하고 타지에 다니고 있었다. 시간과 자금 등 면에서 환자들의 고충을 료해한 그는 전문적인 구강교정 기술의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했다. 2003년 그는 직장을 떠나 연길에서 구강 정형외과 전문의에게서 교정술을 배웠다.
2005년에 안도현에 돌아온 그는 구강진료소를 설립하고 자주창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초기에는 자금이 부족하여 동분서주하며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리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해 6월 정식으로 개업했다. 그러나 경영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그는 허다한 문제에 봉착했다. 우선 진료소로 찾아오는 환자가 없었다. 환자들은 믿음성이 적은 진료소에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이 상황을 료해한 리경명은 TV광고, 전단지 배포 등 여러 면으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래도 효과는 미미했다.
그제서야 그는 의료업종의 특수성을 깨달았고 환자의 인정과 군중의 입소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터득했다. 그는 조급증을 삼가하고 환자가 찾아올 때마다 살뜰하게 대하고 책임껏 치료하면서 성실한 경영에 힘을 기울였다. 자문하는 손님에게는 참을성 있게 설명하고 치료가 끝난 후에는 제때에 답방하여 추적봉사를 했으며 고객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며 부족점을 메워나갔다. 결과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가 점차 늘었고 운영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2012년 그는 북경시구강임플란트연구원에 들어가 국내 최고 권위의 임플란트전문가 숙옥성 교수를 모시고 임플란트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북경에서의 학습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구강진료소를 확장했는 데 개조를 거쳐 시설, 기능 등 면에서 현대화 구강진료소의 요구에 더 접근했다. 그는 진료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기계설비를 새로 들여오고 인재양성과 경영관리를 강화했다. 우수한 대학교 졸업생을 채용하고 표준화 절차 및 엄격한 규정제도를 제정했으며 림상토론을 정기적으로 조직해 의료진의 기술과 봉사 수준을 끊임없이 향상켰다. 그리고 실무평가 기준을 계량화하고 임금제도를 완벽화하는 등 조치로 종업원들의 적극성, 주동성, 창의성을 끌어올렸다.
일련의 조치를 통해 그의 구강진료소는 진찰회수,치유률,경제적 효익 등 면에서 상승일로를 달렸고 환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브랜드효과를 창출했다.
안도현은 인구가 적고 생활수준이 낮은 등 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처해있어 현지 구강의료시장에 대한 외래 자본의 투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발전하려면 자신의 노력에 의거해야 했다. 그는 관련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관계를 맺고 각종 정밀 첨단설비를 도입해 안도현의 군중들이 높은 수준의 구강진료를 향수받게 했다.
리경명은 안도현 군중들의 구강건강 수준을 더한층 높이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구강건강을 챙기는 방법 등 내용을 둘러싸고 선전교양 활동을 벌렸다. 2013년부터는 적령기 아동과 청소년의 치아에 불소를 바르거나 치아의 구멍을 메우는 등 예방 프로그램 무료 제공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다음 세대의 구강건강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았고 공급사슬의 리윤 공간을 줄이더라도 진료 종목의 료금을 인하했으며 최대한 군중에게 리익이 되도록 했다.
최근년간 그는 관련 부문의 지지와 방조하에 구강건강 학습을 정기적으로 조직하고 전문가를 초빙해 환자들의 의문점을 해결해줬다.
리경명은 지금도 대학에 입학할 때 맹세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천직으로, 사명으로 간주하고 있기에 그는 지난 20년 동안 진료소에 찾아온 환자들에게 최상의 봉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영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볼 때 보람을 느끼군 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윤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