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한해가 왜 이리 빨리 가는가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주마등처럼 빨리 흐르는 것 같고 1년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것 같다.
필자의 기억에는 열살에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진 지루하리 만큼 긴 시간을 기다렸던것 같다. 그런데 어제 금방 서른이 된 것 같았는데 쉰살을 넘기고 보니 4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고 세월이 후딱 가 버린 것 같다. 예전에 10대인 어린 필자를 놓고 80세가 넘은 외할머니가 “너 나이 때가 어제 같았은데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전혀 산 것 같지 않다.”고 하셨다. 그땐 이렇게 오래 사시고도 왜 이런 말씀을 하실가 리해할 수 없었는데 50대를 넘기고 보니 인제 화살처럼 지나가는 세월 앞에 자꾸 외할머니의 그 말씀이 떠오른건 웬 까닭일가. 정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걸가…
어려서부터 간혹 일기를 쓴 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압학해서부터였다. 지금 보면 그냥 일기인 것이 아니라 20대의 필자의 생각이나 느낌들을 상세히 적은 필자의 젊은 날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다섯, 여섯 페지 넘게 깨알처럼 박아쓴 일기에는 매일 새롭고 인상적인 것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상세히 묘사해가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 희망 그리고 새로운 사물에 대한 리해와 새롭게 알게 된 경험과 교훈도 일일이 적고 있었다.
그러다가 매일 글 쓰는 일보사 기자라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일기쓰기를 저쪽으로 밀어놨다가 40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일기쓰기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일기를 쓰고 나니 쓸 내용도 점점 줄어들고 어제와 같은 오늘의 반복을 별로 적을 내용도 없어 거의 일률적으로 짧아져가고 있었다. 20대에 느꼈던 새로운 사물에 대한 리해와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이 40대에는 별로 없고 단조롭고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경험들의 련속이라고나 할가…하여 얼마 안 가 그냥 일기쓰기를 집어치우고 말았다.
왜 나이가 들면 저장되는 경험과 정보량들이 점점 적어지는 걸가? 어렸을 때는 매일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보량도 많고 세세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기억된다. 하지만 어른의 경험은 대부분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뇌를 통과하는 정보의 량은 줄어들고 기억력마저 쇠퇴해진다. 따라서 나중에 떠올렸을 때, 젊은 시절은 다채로운 경험과 인상적인 기억의 련속인 반면, 40대, 50대의 시간은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경험 뿐이여서 하루하루가 흐리멍텅해지고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고 1년이 눈 깜작할 사이에 날아가버린 듯 사라진다.
낯선 길을 갈 땐 멀게 느껴지지만 돌아올 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같은 거리여도 우리가 느끼는 소요시간은 전혀 다르다. 갈 때는 새로운 정보가 많아서 주위를 살피면서 가지만 올 땐 이미 알고 있는 길이라 집중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처음 가는 길과 같이 다채롭고 길게 느껴질 것이다.
“시계에 표시되는 물리적 시간은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청소년들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뚝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그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데 그래도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로년이 되면 몸이 지쳐버리면서 강물의 속도보다 훨씬 뒤처진다. 그렇다보니 강물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강물은 청소년기나 중년기나 로년기 모두 한결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어느 유명 학자가 한 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열살짜리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쉰살의 어른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의 1밖에 안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른 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감 탓에 시간의 속도를 더 빠르게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가설들을 뒤받침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1분은 60초, 하루는 24시간, 시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시계와 달력으로 시간을 재단하고 관리하지만 때론 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기도 하고 때론 영원할 것처럼 늘어진다.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일 것 같은 시간은 사실 가장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고 인위적이다.
나이가 들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새로운 경험을 만끽한다면 시간도 길게 느껴질 것이다. 지난해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느낀다면 “내가 점점 늙어가고 있구나.” 한탄하지 말고 올해에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삶에 변화를 줘서 기억할 거리를 만들어 인생을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바꾼다면 시간도 더 길어질 것이다.
변화는 나이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도전하고 경험할 수 있고 나이에 따른 기억력 둔화속도도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늦출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