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족의 이주사와 맥락을 함께 하는 조선족장기는 수백년간 조선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오면서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어왔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농한기에는 물론 다망한 농번기에도 짬짬이 틈 내 골목길에서, 사랑방에서, 서늘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며 장기를 즐겼고 때론 물려달라느니, 안된다느니 옥신각신 다투기도 한다. 여라문살 되는 어린이들도 온종일 뛰놀고도 집에 모여들어서는 장기판을 펴고 제법 올방자를 틀고앉아 “장이야-”, “멍이야-” 하며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장기를 둔다.
하지만 10년의 대동란과 이후 개혁개방의 급물살에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던 우리의 조선족장기는 어느덧 색바래지고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 사라져가는 조선족장기의 맥락을 이어가기 위해 연변의 장기애호가들은 앞장서 조선족장기협회를 내오고 조선족장기활동을 활발하게 조직했다. 뒤이어 흑룡강지역에서도 조선족장기협회가 발족되였고 조선족장기활동은 연변과 쌍벽을 이루게 되였다. 이후 조선족들의 관내지역으로의 대이주가 진행되면서 조선족장기협회도 전국 방방곡곡에 뿌리내렸다. 선후로 전국에서 15개 조선족장기협회가 발족되였고 조선족기업인들의 후원으로 전국적인 장기대회가 수차례 조직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족장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조선족기사(棋士)들은 세계적인 조선족장기대회에서 뛰여난 기량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료녕지역은 장기애호가는 적지 않으나 조선족장기협회가 조직되지 못해 조선족장기의 ‘불모지’로 자리매김되였었다.
이러한 료녕지역의 조선족장기 ‘불모지’를 샹그릴라로 탈바꿈시킨 이가 있다. 료녕지역의 조선족장기를 부흥시킨 료녕성조선족기류협회 회장 류상룡씨(1964년생)이다. 훤칠한 체구에 시원시원한 성격의 류상룡씨는 료녕의 토배기가 아닌 ‘이민’ 온 ‘연변사나이’이다. 연길에서 태여나 1985년 고중을 졸업하고 곧바로 참군했던 그는 1989년에 제대해 연길시밀가루공장에 배치받고 공단장직까지 맡게 되였다. 1995년 하해바람에 합승해 구쏘련에서 복장장사도 했고 연길에서 안해와 함께 컴퓨터장사도 했다. 1997년 그는 단신으로 북경에 진출했다가 여의치가 않아 1999년 심양에 오게 되였다. 그는 이곳에서 컴퓨터장사, 복장장사, 한국의 모 브랜드화장품 동북 총판매를 맡고 열심히 뛰였다.
2004년의 어느 날, 서탑골목의 조선족로인활동실을 지나다 조선족로인들이 장기를 두는 것을 목격하고 그날의 일도 잊은 채 장기를 두게 되였다. 12살 때 동네 어르신들 어깨너머로 장기를 배웠던 그는 점차 린근에 적수가 없을 만큼 장기를 잘 두게 되였고 향운동회에서는 맡아놓고 우승을 했다. 1994년 동북3성 조선족장기대회에서는 프로 5단 증서까지 받게 되였던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장사하느라 장기를 둘 시간이 없었지만 장기수는 녹쓸지 않았다. 그가 장기를 잘 두는 것을 보고 로인들이 돌림돌이로 그와 장기를 두게 되였다. 오랜만에 군이 떨어지게 장기를 두었다. 그날 이후로 류상룡씨는 서탑조선족로인활동실의 단골로 되였고 ‘장기 잘 두는 사람’으로 통하게 되였다.
서탑에 장기 잘 두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며 서탑은 물론 심양지역에서조차 류상룡씨와 한판 겨루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중 심양시조선족제1중학교 부교장 박석호, 기업인 방철학씨와 장기애호가 김을도 로인까지 점차 의기투합하여 장기협회를 설립할 타산을 하게 된다. 드디여 2006년 10월 22일에 심양시조선족기류협회가 세워지고 류상룡씨가 회장을 맡게 되였다.
심양시조선족기류협회가 세워진 이후 류상룡씨 등의 노력으로 조선족장기활동은 전에 없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2007년 ‘료녕-한국 친선경기 및 료녕성 레드옥스조선족장기시합’을 조직했고 이후 또 두차례 더 료녕성조선족장기경기를 펼쳤다. 2008년에는 료녕성조선족장기대회를 4차례 조직했고 은덕컵만융운동회 장기경기와 연변 3부락 동북3성 조선족장기초청경기에도 참가했다. 심양시조선족기류협회는 이처럼 장기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는데 지난 단오절 전야인 5월 27일과 28일에 단동에서 펼쳐진 장기대회까지 료녕성조선족장기대회가 15차 펼쳐졌고 전국 조선족장기대회도 2차 조직했으며 세계적인 조선족장기대회도 몇차례 조직했다. 류상룡씨는 또 심양시를 중심으로 무순, 대련, 영구, 안산, 단동 지역의 조선족장기협회를 내오는데 아낌 없는 성원과 도움을 주었고 올해 5월 5일에는 드디여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의 비준을 거쳐 정식으로 료녕성조선족기류협회를 설립했다.
아무리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이고 민속문화라 할지라도 발전과 전승이 없으면 뿌리가 썩어가고 있는 나무와 별반 다름 없다. 조선족장기도 마찬가지이다. 발전과 전승이 없으면 결국 조선족장기는 우리 세대에서 끝나게 된다. 이를 감안한 류상룡씨는 2010년부터 심양시조선족기류협회 성원으로 조선족중소학교에 찾아가서 무료로 조선족장기 강의를 해주었는데 7년간 무려 1800여명의 후비력을 양성해냈다. 이는 단순한 후비력이 아니라 민족문화유산를 전승해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류상룡씨는 조선족장기가 단순한 골목장기에서 하나의 전통민속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해 심양시무형문화재등록을 신청해 이미 비준받았다. 무순과 안산에서도 그의 도움으로 무형문화재 등록사업을 다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족장기활동은 돈이 들어오는 경제활동이 아니라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 한다. 류상룡씨는 매번 활동 때마다 수천원에서 수만원씩 자기 돈을 아낌 없이 내놓았는데 지금까지 그 액수는 무려 100여만원에 달한다.
“민족전통문화를 발전하고 전승하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적재적소는 없겠죠.” 100여만원의 거금도 민족전통문화를 위한 데 사용한 것이여서 적재적소라 하는 류상룡 회장은 허허 웃으면서 앞으로도 조선족장기를 위한 일이라면 혼신을 다하련다고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