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군은 한국의 서해안에 위치해 있다. 부안군을 찾은건 부안 최씨(扶安崔氏) 조상들이 지내던 곳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였다. 물론 이곳이 품은 풍부한 력사 유물과 문물들도 필자를 끌어당기기엔 충분했다.
한번 기회가 있으면 꼭 찾아가 보려던 참에 서둘러 집을 나서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서울 ㅡ 부안행뻐스에 올랐다. 발차하여 3시간만에 부안읍에 도착하였다. 반겨맞는 사람도, 마중을 나올 사람도 없는 산설고 낯설은 곳이다. 단지 옛조상들이 살던 곳이라는 이 한점만 믿고 온 부안이였다. 다행히 뻐스 안 에서 부안에 계신다는 박씨성을 가진 분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운데 부안군의 위치와 마을들의 분포를 대략 알게 되였다.
족보를 보면 부안최씨는 경주최씨의 시조 최치원의 후 예로서 경주최씨에서 청주최씨로, 또 청주 최씨에서 이적하여 부안최씨로 되였는데 부안최씨의 시조는 최창일이라고 기록되여 있다.
부안군 소재지는 큰도시가 아니여서 번화한 거리도 고층건물도 없는 조금은 한적한 읍이었다. 부안군은 한국의 남서부지방에 속하는 데 기후가 온화하고 넓은 벌이 있어 농사가 잘되는 곳이다. 또 바다를 끼고있어 수산물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부안군에는 이름있는 력사유적과 문물들이 있고 소문높은 새만금방파제가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 목적지이다. 부안군은 “불멸 의 리순신”을 찍은 장소인 역포와 벽산해수욕장, 채석강나루터, 내고사절, 직소의 폭포, 달빛 좋은 월명암, 높은 산속의 개암사, 구리암의 지석묘 등 유적과 유물들도 품고 있다.
부안군은 량식과 수산물이 많이 나는 곳이다. 부안최씨가 이곳에 정착한 것도 그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부안군 농민들의 생활형편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뻐스안에서 알게 된 박씨로부터 그의의 가정형편을 넌지시 알아보았다.
박씨는 부안군에서 나서자라 부안군에서 결혼하여 지금까지 부안군에서 살고있다고 하였다. 자기의 집과 농토를 가지고 땅과 정을 나누면서 풍년의 기쁨, 흉년의 아픔을 겪으면서 30년을 농사지었다고 한다. 3년 전만 하여도 도시 직장인이 부럽지 않게 부부가 년수입 2천만원을 올렸다고 하였다.
그때는 나라에서 고가로 쌀을 사들였는 데 지금은 정부에서 쌀을 매입하지 않아 수입은 3년 전에 비해 반토막나 생활이 여유가 없이 빠듯하다고 말하였다. 농민은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난감하다. 농민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외국의 쌀을 수입해야 하는 사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