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은 여섯번 자리를 옮기다 오늘에야 고유의 터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 룡산구 이촌역에 있다. 세계 제6위의 규모를 갖춘 이 박물관은 15만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보물 1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9만 8000평 부지에 건축면적 4만 6000평, 전체 길이 404메터이고 3층으로 된 전시관을 갖고 있다. 전시장은 구석기 발해 시대를 중심으로 한 고고관과 고려-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한 력사관 그리고 그림과 조각 및 서예품으로 된 2층관과 기증받은 유물을 모은 기증관, 아세아관 이렇게 모두 6개 관으로 구성되여 있었다.
박물관에는 ‘발해실’과 ‘인도네시아실’ 등 전에 없었던 새로운 전시관도 마련되여 있었다. 20세기초, 중국 신강 위그르지역 등에서 일본 오다니탐험대가 수집하였던 유물을 선보이는 ‘중앙아세아실’ 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전시장이 될 저력도 보였다. 15만점 이상의 유물 중 1만 1000점만 개관될 때 전시되였다. 그중 국보 50점, 보물 79점이 포함됐다.
개관되여 보름동안 매일 2만명의 관람객들이 관람하였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람청에 밀려들었다. 나는 관람객들의 줄을 따라 전시청을 돌아보았다.
1층에는 사뢰정치관으로 되여있었다. 한국,중국 일본 및 세계 여러나라와의 우호관계가 현시 대까지 력사상에서 진행된 과정을 도편과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전시관 2층은 서예와 미술관이었다. 서예작품관에는 중국 상-진 시기의 갑골문, 종정묘, 무궁 정, 석고문, 태산가석을 포함해 중국의 다양한 력사시기의 유명한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여 있었다.
중국의 력대서예작품과 대조하여 한국의 서예작품도 전시되여 있었다. 한국의 서예는 중국의 한자를 수용한 기원전 2세기로부터 시작되였는데 (集)자와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였다. 필자에겐 유명하다는 김종선 선생이 쓴 시와 백하 윤숭 선생이 쓴 작품이 비교적 돋보이였다. 왕실의 서예도 유명하였다. 어필중 정조임금이 쓴 ‘임지로 떠나는 철용 부사에게’란 글이 마음에 들었다.
3층 전시관은 고고물과 부처전시관이었다. 많은 고고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국 부처는 대부분 경상도의 김해시와 경주시에서 발굴된 것으로 기록돼있었다. 이 두 곳은 옛날 가야국과 신라국의 수도였으므로 출토 문물이 많은 듯 했다.
전시관 외부는 성곽모양으로 설계했다. 전시관 옆에는 인공호수를 만들어 여러가지 수상식물을 기르고 주위엔 한국에서 나는 희귀한 나무들을 심어놓았다.
전시관을 상세히 돌아보자면 약 11시간이 걸린다. 명품코스만 둘러보려해도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몇만명이 두줄로 서서 천천히 걸으면서 관람하기때문에 마음에 드는 전시품을 오래동안 세세히 감상하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