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 한대로 창업을 시작한 염거강이 전 주 최대규모 다기능 현대화 촬영기업의 책임자로 도시신인촬영집단, 서울여인민속촬영 리사장으로 활약하며 18년간 수만명의 신혼부부에게 행복의 순간을 기록해주고 있다.
1997년, 염거강은 미술학원을 졸업하고 심양의 대만촬영기업에서 근무했다. 3년 동안 일터에서 꾸준히 배우며 실천한 보람으로 미술 디자인으로부터 기획, 촬영에 이르기까지 핵심 기술을 터득하고 2000년부터 고향에 돌아와 창업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 연길에는 규모있는 웨딩촬영업체가 두개 있었지만 그는 100평방메터 되는 가게를 임대맡고 두명의 종업원과 함께 창업에 도전했다.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일년 반 만에 그의 촬영가게는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와 영업면적을 800평방메터로 늘이고 더 많은 종업원을 초빙했다. 그 시기 직면한 가장 큰 곤난은 자금결핍이였는데 그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려 운영을 보장하고 수입금이 모아지는 족족 촬영장비에 투입했다.
2004년, 그는 자기의 장점을 발휘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업 이미지를 선전했다. 면사포를 쓴 녀자아이의 화보를 찍어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한 결과 인물 촬영에서 소박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인상깊게 부각시킨 화보를 제작하는 업무를 광범위하게 홍보했다. 일찌기 2002년부터 준비해온 경영 모식의 전변은 드팀없는 탐색중에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2008년, 염거강은 1원으로도 웨딩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제안을 과감히 제기하고 촬영업종에 남아내려오던 기존의 모식을 타파하고 정찰가격을 명시하여 소비자들의 판단과 요구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촬영 예약부터 마감까지 세부적이고 ‘집’의 요소가 두드러진 문화 공간에서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맞춤형 서비스는 호평을 자아냈다.
‘집’ 문화 리념은 서비스 뿐만 아니라 기업 관리에서도 구현됐다. 그는 종업원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매일 독서필기를 하도록 권장함으로써 지식으로 두뇌를‘무장’하여 자질을 제고하는 학습형 집단을 형성했다.
2007년에 회사에서는 ‘효심카드’제도를 실행해 근무년한 1년부터 600원의 ‘효심카드’를 지급했는데 최고로 5000원까지 받은 종업원이 있었다. 년말총화 때면 종업원들은 친척과 함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고 또 숙박을 포함한 비용도 정산받았다.
18년간 줄달음쳐온 창업의 길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발전의 자국을 또렷이 남긴 염거강은 현재 익화광장에 영업면적이 4000평방메터에 달하는 촬영공간을 마련하고 손님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회사는 선후하여 길림성 유명 상표, 연변 10대 유명 상표 영예를 받았고 염거강도 연길시 정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변에 중국정호커피경영학원을 창설하고 관련 종사자들이 연변에 와 가맹훈련을 받게 하는 등 조치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연변의 민속문화와 례의문명을 료해하게 하는 것이 향후의 목표”라고 염거강은 말했다.
정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