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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의 화룡 -- <청산리 대첩>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6-20 23:34 조회: 1,904
봉오동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본은 간도지방의 항일운동을 근절하기 위해 "간도지방 불령선
인 초토계획"을 세우고 일본군을 훈춘, 왕청, 용정지구에 파견했다. 또 러시아 연해주에서
철수하는 일본군 제 14사단을 남하시키고 요동지구에 출병했던 관동군부대를 동진시켜 연
변지구를 포위했다. 이들 일본군의 총병력은 총 2만 5천여 명에 달했다.

일전을 각오한 조선 항일부대들도 1920년 10월 화룡현 서북 산간지대로 집결했으니 이들의
병력은 홍범도의 독립군이 약 300명, 안무의 국민회가 약 250명, 한민회 약 200명, 의민
단 약 100명, 신민단 약 200명, 광복단 약 200명,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부대가 약 1,800명
이었다. 북로군정서 부대에는 가족과 비전투원 1,200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사관학교 졸업생 200명과 신병 270명이 합세했다.

청산리는 두만강 대안의 무산에서 100리 떨어진 산골짜기로 서·남북은 험한 산으로 둘러
싸이고 동남부만 벌어진 긴 골짜기이다. 골짜기 입구인 충신장에서 동서로 60리를 길게 뻗
은 골짜기에는 대진창, 송리평, 평양촌, 싸리밭촌 등의 마을이 줄지어 있다. 청산리 북쪽
의 골짜기를 이도구라 한다. 이쪽에서 100리를 가면 용정이 나온다. 이도구 골짜기에는 어
랑촌, 봉미촌, 갑산촌, 천수동, 만록구 등의 마을이 있다. 일본군은 이러한 지형을 이용해
독립군을 섬멸하려 한 것이다.

10월 20일 김좌진 장군의 제1제대는 청산리를 거쳐 백운평 북쪽 닭볏바위 위에 은폐해 있
었고, 이범석 장군의 제2제대는 해란강 상류 직소라는 곳에 잠복해 있었다. 10월 21일 아
침 해뜰 무렵 일본군 보병 73연대 선두부대 200명이 경계심 없이 종대를 지어 북로군과 제
2제대가 매복하고 있는 권내에 이르러 아군의 사격을 받아 30분 사이에 선두부대가 전멸당
했다. 이것이 청산리전투의 첫 승리였다.

이날 오후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어랑촌 부근 북와록구에서 일본군
주력부대와 격전을 벌인다. 홍범도 부대의 위치를 모르는 일본군은 독립군이 매복해 있으
리라 생각되는 곳에 불을 지르고 연합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 남북 와록구를 따라 진공하고
있었다. 이에 홍범도 장군은 예비대를 중앙고지에 배치해 항전케 하고, 자기는 주력부대
를 인솔하고 측면고지에 매복했다. 중앙고지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던 예비대가 중앙고지를
떠나자 일본군이 중앙고지를 점령했다. 자리바꿈을 한 연합부대 주력은 정면반격을, 연합
부대 예비대는 측면공격을, 그리고 거기에 다른 일본군 부대가 중앙고지에 있는 일본군을
공격해 중앙고지에 있는 일본군은 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참패했다.

백운평 직소전투를 끝낸 북로군과 제2제대는 80리 길을 밤새워 걸어 20일 새벽 2시에 와룡
구 갑산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0리도 안 되는 천수평에 일본군 기병 1개 소대가 숙영한
다는 정보를 접하고, 제2제대가 이를 습격해 기병 4명만이 도망치고 전멸을 당했다. 천수
평의 소식을 들은 일본군은 야지골에서 아군을 맞아 싸웠다. 이 소식을 들은 홍범도의 연
합부대가 가세해 전세는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된 격전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해질 무렵 계산촌과 어랑촌 일대로 철수하고 아군도 사격
을 중지한다.

10월 24일과 25일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부대 300명과 북로군부대 잔병 30여 명을 이끌고
천보산 남쪽 협곡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해 큰 전승을 올리고 25일 저녁 오도양차 부근
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 수색대의 의도를 안 홍범도 장군은 숙영지 부군에 병력을 매복,
적을 유도해 적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것이 청산리전투의 마지막 전투이다.

6일간 계속된 청산리대첩에서 일본군은 연대장 1명, 대대장 2명을 포함해 병사 1,254명이
전사했고 부상자 200여 명을 냈다. 그리고 아군 전사자는 약 200명이라 한다. 청산리전투
에서 아군이 노획한 적의 군수물자는 중기관총 2정, 보총 수백 정, 군복 700여 벌, 권총 5
00여 자루, 그리고 탄약 등이었다. 청산리대첩은 당시 서울의 동아일보에도 크게 보도되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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